관계를 맺고자 하는 열망

우연히도 최근에 본 두 편의 영화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로웠다. 게다가 둘 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첫 번째 영화는 “언터처블: 1%의 우정”

사고로 머리를 제외한 모든 신체가 마비된 백만장자 장애인 필립과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최하층민 드리스.

영화를 보는 내내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별다른 기승전결 없이 소소한 에피소드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 그 사람의 겉모습이나 조건이 아닌 사람 그 자체로 볼 수 있을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1%의 우정을 나누었던 필립과 드리스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둘 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두 주인공은 절박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버려야만 하는 처지였다. 결국 변화의 핵심은 현재 가진 무언가를 버려야 한다는 것.

 

두 번째 영화는 “메리와 맥스”

클레이 애니메이션이지만 ‘언터처블: 1%의 우정’과는 반대로 영화를 보는 내내 우울했다. 가정을 신경 쓰지 않는 아빠와 술담배에 절어 사는 엄마 사이에서 사랑 받지 못하는 8살의 호주 소녀 메리, 그리고 사회적 상호작용에 어려움을 겪는 질병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않고 있는 44살의 미국 아저씨 맥스.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영화 끝 부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널 용서하는 이유는 넌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야.
넌 완벽하지 않아. 나도 그렇고. 모든 인간이 완벽하지 않아.
우리가 가진 단점들은 우리가 고른게 아냐. 우리의 일부야. 함께 살아가야만 하지.
하지만 친구는 고를 수 있어. 널 고를 수 있어 난 기뻐.
넌 가장 소중한 친구고 하나 밖에 없는 친구야.

필립과 드리스는 서로를 겉모습이 아닌 한 인간으로 보았기 때문에 평생의 우정을 얻을 수 있었다. 메리와 맥스는 서로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진리를 인정하면서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누구나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길 간절히 소망한다.그래서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르나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싶어하고, 인정 받기를 원하며, 공감해 줄 사람을 기다리면서 늙어간다. 하지만 두 영화에 등장하는 네 주인공은 모두 누군가가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그렇게 해주길 바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사랑하고 인정하고 공감하여 친구를 얻었다. 그것들은 모두 내가 누군가에게만 먼저 줄 때에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내향형인 나는 한 가지를 더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
P.P.S. 하지만 내가 내향형이라는 점이 핑계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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